신용회복경험담

2025.08.04 15:56

50세 농촌 여성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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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결혼 후 줄곧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전남의 작은 마을에서 벼농사와 특용작물 재배를 하며, 검소하게 살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로웠죠. 두 자녀는 공부 잘하고 서울로 진학했고, 우리는 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농촌에서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교육비가 한창 들어가던 시기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이제 우리도 농번기 외에도 수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프랜차이즈 카페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시내에 있는 작은 상가를 보증금 2천만 원에 임대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권하는 대로 인테리어와 장비를 마련했습니다. 초기 투자금은 대출과 카드 현금서비스로 충당했는데, 총 8천만 원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저의 강한 의지에 결국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냉혹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 특성상 손님은 하루 열 명도 채 안 되는 날이 많았고, 코로나 여파까지 겹치며 점점 적자는 쌓였습니다. 1년 반쯤 지나서는 카드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고, 매달 이자만 60만 원 넘게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가게를 정리했지만, 남은 건 1억이 넘는 빚뿐이었습니다. 은행 2곳과 카드사 2곳의 채무가 각각 쌓여갔고, 채권 추심 전화는 하루에도 수차례 왔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창업 실패 후 남편과 저는 다시 농사일에 전념했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건 ‘내가 가족을 망쳤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겐 차마 말도 못 했고, 친정 식구들마저 눈치가 보여 전화도 피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 지인의 소개로 마을 회관에서 열린 무료 법률 상담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겁이 났습니다. ‘내가 정말 법원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밤새 고민도 했죠. 하지만 더 이상 숨을 곳도 없었고, 그날 상담해주신 분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습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거예요.”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개인회생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넉 달 정도 걸렸습니다.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았고, 금융 거래 내역, 소득 증빙 등 꼼꼼히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건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하던 날, 낯선 법정 풍경에 주눅 들었지만, 판사님의 차분한 설명과 질문을 들으며 어느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최종 인가가 떨어졌을 때, 처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현재 저는 월 24만 원씩, 총 3년간 변제하는 계획을 따르고 있습니다. 농업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처음엔 걱정도 많았지만, 간이영수증과 판매내역을 꾸준히 정리하며 극복했습니다.
꾸준히 납입 중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연체 없이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농사일에 전념하며 남편과 함께 소박하지만 안정적인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엄마, 그 선택이 우리 가족을 지켰어”라는 말에 그간의 미안함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무리하게 꿈을 꾸었던 지난날을 반성도 하지만, 지금은 다시 농촌이라는 뿌리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저처럼 빚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상담부터 받아보세요.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재도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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