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늦게나마 다시 잡은 삶의 끈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9.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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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안정적이던
저는 올해 59세, 오래 다니던 공장에서 퇴직한 뒤 창고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오랜 세월을 함께했고, 자녀 둘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각자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조금만 아껴 쓰면 노후도 큰 문제 없겠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평범하지만 안정된 생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도박의 유혹에 무너지다
하지만 문제는 퇴직 이후 느껴진 공허감에서 시작됐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고, 정기적인 수입은 줄다 보니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다 스포츠 도박을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즐기는 오락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작은 성공이 큰 착각을 불러왔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돈도 벌고, 노후가 든든해지지 않을까?”라는 헛된 기대였습니다.
결국 카지노까지 드나들게 되었고, 불과 2년 8개월 만에 빚은 6천 5백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처음엔 카드 현금서비스로 시작했지만 금세 한도가 차 버려, 대부업체 3곳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을 훌쩍 넘었고,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감당이 안 됐습니다. 아내에게는 차마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으며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개인회생을 결심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의 눈물이었습니다. 독촉 전화가 집으로까지 걸려오면서 결국 빚이 들통났습니다. 아내는 크게 실망했지만, “이제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가족까지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습니다.
개인회생을 고민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내 나이에 이런 걸 해도 될까”라는 자책감과 “혹시 기각되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주변에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몇몇 지인은 “혼자 끌어안지 말고 법적인 절차를 밟아라”라며 적극 권유했습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갈 때는 손발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제 잘못을 고백하는 자리 같았기 때문입니다.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 후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변제 계획은 월 35만 원씩 3년간 납부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제 나이와 아르바이트 소득, 가족의 생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서류 준비였습니다. 은행과 대부업체 거래 내역, 소득 증빙, 지출 내역까지 꼼꼼히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얼마나 무모했는지 직면하게 되었고, 마음이 무너질 뻔했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격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법원 출석일에는 판사님 앞에서 “이제는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판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실히 변제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된다”고 하실 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인가 결정이 나던 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가슴 깊이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독촉 전화가 멈추고, 빚에 쫓기던 불안감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변제 1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매달 35만 원씩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생활은 빠듯하지만, 정해진 금액을 계획적으로 갚아나가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내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자녀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남은 기간 성실히 변제를 끝내고, 다시는 도박에 손대지 않는 것입니다. 퇴직 후 남은 삶은 크지 않은 수입이더라도 정직하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길을 걸어온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박은 결국 삶을 파괴합니다. 하지만 개인회생은 망가진 인생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지금 다시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