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개인회생 경험담입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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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끝에서 다시 시작한 삶” – 청년 CEO의 개인회생 이야기
도입부: 꿈을 던 평범한 청년
스무 살이 막 넘었을 무렵,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도 뒤로 미룬 채 서울로 상경했고, 낮에는 알바를 하고 밤에는 보컬 트레이닝, 댄스 학원, 오디션을 전전하며 연습생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싫어 웬만한 비용은 카드 돌려막기로 해결했고, 그 당시에는 ‘언젠가 데뷔하면 다 갚을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은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4년이 지나 20대 후반이 됐을 때,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 남은 채 서울 원룸 한 켠에 쭈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전개: 채무의 늪, 그리고 탈출구 없는 일상
연습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난 후,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영상 콘텐츠 제작 경험을 살려 작은 크리에이티브 회사였죠. 혼자 법인 설립부터 마케팅, 계약까지 해나가며 바쁘게 살았지만, 초기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익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어느새 카드론과 가족에게 빌린 돈이 합쳐져 3천 9백만 원이라는 빚이 쌓였습니다. 매달 카드 대금과 이자만으로 40만 원 이상 빠져나갔고, 수입은 들쑥날쑥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차마 다시 손을 벌릴 수 없어 혼자 끙끙 앓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닥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점점 커져 갔습니다.
위기: 결심은 두려움 끝에서 찾아왔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퇴직이었습니다.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노후 대비도 못 하신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 없다는 생각에, 한밤중 눈물을 삼키며 스스로를 책망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실패자처럼 느껴졌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죠. 그렇게 몇 달을 망설이다 지인의 권유로 상담을 받았는데, 예상외로 절차는 명확했고, 상담사 분은 제가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내려간 듯했습니다.
해결: 내 삶을 위한 구조조정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5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고 절차도 까다로웠지만, 하나하나 준비하며 제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법원이 승인한 변제 계획은 월 25만 원씩 3년간 총 900만 원 상환, 나머지는 탕감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생활비를 줄이고, 사무실을 공유오피스로 이전하면서 비용을 아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자책이었지만,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이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 저처럼 힘겨운 삶을 살다 구조를 요청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위로받았습니다. 모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었고,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를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말: 실패는 끝이 아니라 전환점
개인회생 인가 후, 제 삶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정기적인 납부로 경제적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불안감이 줄어들며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회사가 작지만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고, 투자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변제 1년 차, 성실하게 납부 중이며 늦게나마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희망이란 단어가 사치처럼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도망이 아닙니다.
그건 ‘내 인생을 다시 정리해보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중요한 건 그 실패를 어떻게 회복해 나가느냐입니다. 저도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길의 끝에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요.